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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과학 실험

비 오는 날 채집한 빗물 속 미생물 관찰 실험

평범한 빗물이 과학이 되는 순간

어느 날 오후, 창밖에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여유를 즐기던 중, 초등학생 아들이 질문을 던졌다. “아빠, 빗물은 깨끗해요? 거기에도 생물이 있을까요?” 아이의 순수한 호기심에 나는 문득 과거 생물학 실습 시간에 했던 실험이 떠올랐다. 바로 빗물 속에 존재하는 미생물 관찰 실험이었다. 우리는 흔히 빗물을 ‘하늘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물’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대기 중의 먼지, 미세입자, 박테리아, 심지어 곰팡이 포자까지 포함하고 있는 복합적인 액체다. 이 사실을 아이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해 나는 다음 날 실험을 계획했다. 준비물은 간단했고, 과정은 흥미로웠으며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 글은 그 하루 동안 진행했던 실험의 전체 과정과, 우리가 관찰한 결과를 담은 기록이다. 특히 초등학생이나 과학에 관심 있는 어린이들이 직접 따라 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설명했다. 과학은 거창한 실험실이 아니라 바로 창밖의 비, 그리고 식탁 위 현미경 하나로도 충분히 시작될 수 있다.

 

빗물 속 미생물 관찰 실험

실험 준비 – 빗물을 채집하고 관찰을 위한 도구 만들기

실험의 첫 단계는 당연히 ‘빗물 채집’이었다. 중요한 것은 빗물을 깨끗하고 위생적으로, 공기 중 이물질이 적은 방식으로 받는 것이다. 아들과 나는 비가 내리는 아침, 베란다 바깥쪽 난간에 플라스틱 비커유리병, 그리고 일회용 투명컵을 놓았다. 컵은 깨끗하게 세척 후 햇빛에 말려 소독했으며, 입구에는 깨끗한 알루미늄 포일을 씌워두었다가 비가 오기 시작하면 바로 제거했다. 이렇게 하면 공기 중의 먼지를 덜 포함한 순수 빗물을 받을 수 있었다.

빗물 채집은 30분~1시간 정도만 해도 충분한 양이 모인다. 우리는 총 3개의 다른 용기에 빗물을 받아 조건에 따라 미생물 양이 달라지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하나는 개방된 공간(베란다), 하나는 부분 차단된 창문 아래, 하나는 실내 환기구 근처에 설치했다. 이렇게 하면 공기 중 오염물이나 건물 구조에 따라 빗물의 미생물 차이를 비교해 볼 수 있었다.

그다음은 관찰을 위한 준비다. 현미경은 초등학생용 광학 현미경을 사용했고, 확대는 40배, 100배, 400배까지 가능한 모델이었다. 슬라이드 글라스와 커버 글라스는 과학 실험용 키트를 미리 온라인에서 구매해두었다. 슬라이드에 빗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 커버 글라스를 덮는 방식으로 샘플을 만들었다. 이때 주의할 점은 공기 방울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덮는 것이다. 관찰은 받은 직후와, 12시간, 24시간 후에 각각 진행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생물이 더 번식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실험 관찰 – 빗물 속 미생물은 어떤 모습일까?

첫 번째 관찰은 빗물을 받은 지 1시간 이내에 진행되었다. 슬라이드 위에 빗물을 올려놓고 현미경을 통해 100배로 확대해 보니, 투명한 유체 속에 움직이는 작은 점들이 보였다. 처음 보는 아이는 “이게 뭐예요?”라며 눈을 반짝였다. 우리는 이 점들이 단세포 미생물 혹은 박테리아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움직임이 빠르거나 느릿느릿 이동하는 형태 등 다양한 패턴을 보였고, 일부는 흔들리는 섬모 구조도 관찰되었다.

400배로 확대하자 훨씬 다양한 형태의 입자들이 나타났다. 긴 실처럼 생긴 선형 구조는 사상균의 포자로 추정됐고, 구형이나 타원형의 세포 덩어리는 효모나 원생생물로 보였다. 특히 개방된 공간에서 채집한 빗물에서 가장 다양한 미생물이 관찰되었으며, 비교적 실내에 가까운 위치에서 채집한 샘플에서는 입자가 적었다.

아이와 함께 관찰하면서 우리가 놓친 미생물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박테리아는 크기가 너무 작아 일반 광학 현미경으로는 정확히 형태를 관찰하기 어렵고, 형광현미경이나 전자현미경이 있어야 세부 구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보이는 현상을 직접 보고 상상하고 해석해보는 과정이었다. “이건 무슨 미생물일까?”, “왜 얘는 움직이고 저건 가만히 있을까?”라는 질문을 통해 아이 스스로 관찰하고 생각하는 능력이 확장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12시간 후 두 번째 관찰에서는 변화가 더 뚜렷했다. 슬라이드 샘플은 밀폐된 통에 넣어 실온 보관했으며, 이 상태에서 미생물들이 번식할 수 있는지 관찰했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미세하게나마 덩어리 진 입자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일부는 뿌옇게 혼탁해진 형태도 나타났다. 미생물의 번식이 이루어졌다는 증거로 볼 수 있었다. 아이는 “이 작은 물 안에 이렇게 많은 생물이 있었던 거예요?”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실험의 의미 – 어린이 과학 교육에서 관찰의 가치

이번 실험을 통해 아이가 얻은 가장 큰 배움은 ‘과학은 관찰에서 시작된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교과서에 적힌 지식을 외우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보고, 생각해보고,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는 경험이 훨씬 더 강렬하게 아이의 기억에 남았다. 아이는 이후에도 비가 오는 날마다 “오늘도 빗물 받아서 실험할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아이의 호기심은 실험 이후로 더 넓은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비가 내릴 때 공기 중 먼지도 같이 떨어지나요?”, “저 미생물들은 우리 몸에 들어오면 어떻게 돼요?”,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은 더 많은 미생물이 있나요?”라는 질문이 이어졌고, 이는 또 다른 실험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부모나 교사가 함께 실험을 진행한다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과학적 태도, 탐구력, 관찰력, 비판적 사고까지 함께 길러줄 수 있다. 더욱이 이 실험은 특별한 장비 없이도 가정에서 손쉽게 실행 가능하다는 점에서 교육적 가치가 크다. 스마트폰 현미경 클립 하나만 있어도 어느 정도 관찰이 가능하며, 슬라이드 글라스와 현미경만 있다면 초등학생도 충분히 실험을 재현할 수 있다.

빗물 한 방울이 만들어낸 과학 이야기

비 오는 날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은 흔하다. 하지만 그 비가 떨어지는 순간,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가 함께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번 실험은 그런 미세한 세계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아이와 함께 감탄하며 배우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과학은 거대한 이론과 실험실의 전문 장비에서만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의 질문에서부터 과학은 싹튼다. “비 속에도 생명이 살 수 있어요?”라는 아이의 한마디가, 한 가족의 과학 실험으로 이어졌고, 그 하루가 아이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생활 속 과학 실험을 통해 아이와 함께 세상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키워줄 계획이다. 다음에는 “빗물 pH 측정 실험”이나 “공기 중 미세먼지 채집 실험” 등을 이어서 해볼 예정이다. 이 작은 과학 실험들이 아이의 미래에, 그리고 과학을 바라보는 시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이가 과학을 ‘재미있는 것’, ‘직접 해볼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느꼈다는 사실이다. 과학은 그렇게, 작은 호기심 하나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