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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과학 실험

식물도 소리에 반응할까? 음악과 식물 성장 실험

"식물은 귀가 있을까?"라는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된 실험

어느 날 아들이 물었다. “엄마, 식물도 음악을 들을 수 있어?” 순간 나는 잠시 멈췄다. 귀도 없고 뇌도 없는 식물이 소리를 ‘듣는’ 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당연히 아닐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실제로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식물과 소리의 관계를 탐구하는 연구들이 있어 왔다. 인간은 감정을 느끼고, 음악을 들으며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집중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식물은? 소리라는 자극에 반응해 무언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까?

우리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아주 단순하면서도 재미있는 실험을 설계하기로 했다. 어린이도 쉽게 따라할 수 있도록 준비물을 단순화하고, 실험 과정도 명확하게 나누었다. 실험을 진행하며 우리가 발견한 것은 ‘식물은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반응한다’는 점이었다.
이 글은 단순한 실험 기록이 아니다. 과학적인 관찰력과 일상 속 호기심을 연결하여,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과정을 통해 배울 수 있도록 돕는 과학 학습 콘텐츠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실험은, 식물이 생각보다 더 ‘살아 있는 존재’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음악과 식물 성장 실험

실험 준비: 식물, 음악, 그리고 조건 설정하기

실험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한 건 ‘어떤 식물을 사용할 것인가’였다. 아이와 함께 마트에 들러 작은 화분 코너를 구경하다가, 가격이 저렴하고 생육이 빠른 무순(새싹 채소)과 스파티필룸(잎이 넓은 실내 식물) 두 가지를 선택했다.
무순은 성장이 빠르고 며칠 안에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기기 때문에 실험용으로 아주 적합했다. 스파티필룸은 상대적으로 느리게 자라지만, 잎의 색이나 퍼짐 등을 관찰할 수 있어 보조 실험 대상으로 선정했다.

다음은 ‘어떤 음악을 들려줄 것인가’였다. 음악은 각각 다른 성격의 3가지 장르로 구분했다.

  • 클래식 음악 (모차르트의 ‘작은 밤의 음악’, 쇼팽의 ‘강아지 왈츠’)
  • 록 음악 (일렉 기타 중심의 신나는 곡)
  • 자연의 소리 (새소리, 물 흐르는 소리)

이 외에 아무 소리도 들려주지 않는 통제군(소리 없음)을 추가하여 총 4개의 실험 그룹을 만들었다.

그룹음악 종류식물 종류실험 조건
A 클래식 음악 무순, 스파티필럼 하루 2회, 30분씩 청취
B 록 음악 무순, 스파티필럼 하루 2회, 30분씩 청취
C 자연 소리 무순, 스파티필럼 하루 2회, 30분씩 청취
D 아무 소리 없음 무순, 스파티필럼 동일 환경, 소리 없음
 

모든 식물은 동일한 조건(햇빛, 물, 온도)에서 키웠으며, 오전 10시와 오후 6시, 하루 두 번 스피커로 음악을 들려줬다. 스피커는 식물에서 20cm 거리로 설치했고, 소리 크기는 65~70dB 정도로 유지했다. 이는 일반적인 실내 대화 수준의 볼륨으로, 자극은 있지만 과도하지 않은 수준이다.

실험 과정: 2주간의 기록, 그리고 식물들의 변화

첫째 날, 네 개 그룹의 식물은 모두 새 화분에 분갈이된 상태로 나란히 창가에 놓였다. 아이와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식물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관찰일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특히 무순은 생육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이틀째부터 이미 잎이 올라오기 시작했고, 5일째부터는 그룹 간의 성장 속도 차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 A그룹 (클래식): 무순의 잎이 더 길고, 잎의 색이 진한 초록색이었다. 전반적으로 가장 생기 있어 보였으며, 스파티필룸은 잎이 조금 더 넓게 퍼졌다.
  • B그룹 (록 음악): 무순은 성장 속도는 비슷했지만, 약간 얇고 줄기가 휘는 느낌이 들었다. 스파티필럼은 약간 위축된 모습이었다.
  • C그룹 (자연 소리): A그룹 다음으로 건강해 보였고, 잎의 탄력이나 뿌리의 확장 속도가 안정적이었다.
  • D그룹 (무음): 무순의 성장 속도가 가장 느렸고, 스파티필럼은 잎이 작고 잎사귀 색이 옅었다.

아이와 함께 줄자와 투명 눈금자를 활용해 잎의 길이, 새싹 개수, 줄기 두께 등을 직접 재고 비교해 보았다. 데이터를 표로 정리하고, 사진을 찍어 각 그룹별 일자별 변화도 시각적으로 관찰했다.
클래식 음악 그룹은 일관되게 가장 활력 있는 모습을 보였고, 록 음악 그룹은 중간 정도였지만 때때로 잎이 축 처지거나, 방향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느낀 건, 식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라는 자극에도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반응은 단지 생장 속도의 차이뿐 아니라, 줄기의 방향, 잎의 탄력, 색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왜 식물은 소리에 반응할까? 과학적 원리와 해석

식물은 귀가 없다. 그렇다면 식물이 음악에 반응한다는 것이 과연 말이 될까?
이 질문은 우리가 실험을 진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떠올린 과학적 궁금증이다. 관련 논문과 자료를 찾아보니, 실제로 ‘소리 진동이 식물 세포 내의 이온 농도나 성장호르몬(옥신)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가 존재했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논문 등에서도 특정 주파수 대역(125~250Hz)의 소리가 식물 뿌리의 신장에 영향을 주고, 세포막 투과성이 증가하거나 유전자가 활성화되는 현상이 관찰되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소리는 진동이고, 그 진동은 공기를 매질로 하여 식물에게 도달한다. 식물의 세포 벽이나 조직은 그 진동을 느끼고, 마치 환경 변화에 반응하듯 물리적 신호를 화학 반응으로 바꾼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장 속도, 잎의 넓이, 색소 변화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클래식 음악이 가진 규칙적인 리듬과 주파수는 식물의 ‘스트레스 반응’을 줄이고, 광합성 효율을 증가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반면 록 음악처럼 불규칙적이고 강한 소리는 식물에게 스트레스를 주거나, 방향성 없는 성장을 유도할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했다.

아이와 함께 이 내용을 쉬운 용어로 정리하며, ‘우리 몸이 음악에 반응하듯, 식물도 진동에 반응할 수 있다’는 과학적 연결 고리를 발견하게 되었다.

실험을 마치며: 식물과 소리, 그리고 아이의 변화

2주간의 실험이 끝났을 때,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식물도 친구 같아. 내가 좋은 음악 들려주니까 잘 자라는 것 같아.”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실험을 통해 아이는 관찰력, 기록 습관, 데이터 해석력을 자연스럽게 익혔고, 식물을 생명체로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졌다.

이번 실험은 단순한 과학 활동이 아니라, 생명 존중과 자연의 원리에 대한 감성 교육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게다가 직접 기른 무순을 먹는 날, 아이는 매우 뿌듯해했다. “클래식 무순이 제일 맛있어!”라며 웃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 순간 나는 과학 실험이 단지 결과를 얻는 과정이 아니라, 아이의 인격과 감수성을 키우는 소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집에서 작은 식물과 함께 ‘음악이 들리는 실험실’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과학은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질문을 만들고, 과정을 통해 배움으로 나아가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은 아주 작은 새싹 하나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