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물에도 미생물이 있을까?” 아이와 함께 떠나는 과학 여행
어느 날,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물을 마시다가 물컵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빠, 물속엔 진짜 아무것도 없을까?”
그 말은 그저 지나가는 호기심처럼 들렸지만, 나에겐 꽤 흥미로운 질문이었다. 실제로 우리는 매일 물을 마시지만, 그 물 안에 어떤 미생물이 있을지, 또 그런 미생물들이 어떤 환경에서 더 잘 자라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아들과 함께 ‘물과 미생물’을 주제로 실험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이왕 실험을 하기로 한 김에, 그냥 일반 물이 아니라 pH 수치가 다른 물, 특히 요즘 건강식품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알칼리성 물이 미생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물을 알칼리로 바꾸면 미생물이 안 자랄까?”
이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한 우리의 실험은, 단순한 결과를 넘어서 ‘환경과 생명체의 관계’까지 아이에게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글은 그 과정 전반을 아주 상세히 담았다. 단순한 과학 놀이가 아닌, 과학의 원리와 호기심을 함께 키울 수 있는 실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유한다.
실험 준비 – 가정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실험 구성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준비물이 필요했다. 가정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실험 준비물 리스트
- 깨끗한 생수 3컵 (같은 양, 같은 브랜드)
- 미생물 배양용 페트리 접시 3개 (인터넷에서 구매 가능)
- 물티슈 or 면봉
- 주방용 베이킹소다 (알칼리성 조정용)
- 식초 (산성 조정용 – 대조군 목적)
- pH 시험지 (또는 pH 측정기)
- 비닐장갑, 마스크, 스포이드
- 투명한 밀폐용기 (페트리 접시를 안전하게 보관할 박스)
- 라벨스티커와 매직 (각 물의 상태를 구분하기 위해)
실험 대상 물 설정
- A컵: 중성 물 (생수 그대로)
- B컵: 알칼리성 물 (베이킹소다 소량 첨가)
- C컵: 산성 물 (소량의 식초 첨가)
A, B, C 물의 pH를 측정하여 각각 pH 7(중성), pH 8.59(알칼리), pH 4.55(산성) 수준이 되도록 조절했다. 이 상태에서 각 물에 동일한 방식으로 미생물을 접종한 후 5일간 관찰하며 비교해 보기로 했다.
미생물 채취 방법
손 씻기 전 손가락을 면봉으로 살짝 문질러 미생물 채취 후, 각 페트리 접시에 고르게 문질러 균일하게 분포시켰다. 아이가 좋아하는 방식은 손가락을 직접 물티슈 없이 만져보는 것이었는데, 실제로 그게 더 재밌는 방법이기도 했다.
실험 진행 – 물의 성질과 미생물의 생존력 비교
실험을 시작하고 첫날에는 당연히 모든 접시에 변화가 없었다. 페트리 접시 안의 젤라틴 배양액은 아직 투명했고, 미생물의 흔적도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과연 정말 생길까?” 하며 기대 반, 의심 반의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관찰 1일 차~3일 차
- 중성 물을 접종한 A접시는 2일째부터 작은 흰색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는 세균의 군락으로 보이는 작은 원형 패턴이었다.
- 알칼리성 물을 사용한 B접시는 특별한 변화가 없었다. 표면이 매우 깨끗했고, 오염 흔적도 거의 없었다.
- 산성 물을 사용한 C접시는 A와 비슷한 속도로 미생물 번식이 시작되었다. 다만, 군락의 크기는 중성보다 작고, 약간 불규칙한 형태였다.
아이와 나는 접시마다 날짜 스티커를 붙이고 매일 똑같은 조명을 사용해 관찰했다. 변화는 미세했지만 확실했다.
관찰 4일 차~5일 차
- A접시에는 확연하게 흰색과 연노란색으로 보이는 미생물 군락이 많아졌고, 개수도 2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 B접시는 여전히 군락이 2~3개 정도밖에 없었고, 크기도 작았다.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수준이었다.
- C접시는 군락 수는 A보다 적지만 10개 이상 존재했으며, 표면에 작은 곰팡이성 돌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이와 함께 정리한 관찰표와 사진 기록은 실험의 신뢰도를 높여주었다. 단순히 “별로 생기지 않았네” 수준이 아니라, 군락의 형태, 위치, 밀도까지 아이가 눈으로 비교하면서 ‘과학적 관찰’의 기본을 익힐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실험 결과 정리 – 알칼리성 환경에서 미생물이 자라기 어려운 이유
실험이 끝난 뒤, 각 접시를 투명 밀폐통에 담아 안전하게 폐기했다. 아이와 함께 마스크와 장갑을 낀 상태로 마무리 청소까지 마친 후, 본격적으로 이번 실험을 통해 우리가 알게 된 사실을 정리해 보았다.
가장 중요한 발견은 이것이었다:
알칼리성 물에선 미생물의 생장이 매우 억제된다.
실제로 같은 환경에서 동일한 미생물을 접종했음에도 불구하고, 알칼리성 물을 접한 접시에서는 미생물의 생장 속도와 양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왜 그럴까? 나는 아이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비유를 들었다.
“미생물도 사람처럼 환경을 가려. 어떤 애들은 중간 맛을 좋아하고, 어떤 애들은 시큼한 걸 좋아하지. 그런데 알칼리성은 너무 쓴 맛이 강해서 미생물들이 잘 못 살아가는 거야.”
물의 pH는 생물의 생존과 직결된 중요한 환경 요소이다. 대부분의 미생물은 pH 6.5~7.5 정도의 중성에 가까운 환경에서 가장 잘 번식한다. 알칼리성 환경은 미생물의 세포막을 파괴하거나, 효소 활성에 영향을 주어 생장을 방해할 수 있다.
아이는 이 원리를 듣고 나서 “그럼 알칼리성 물은 병균이 잘 못 자라니까 건강한 거야?”라고 물었다. 나는 “꼭 그렇진 않지만, 알칼리성이 세균의 활동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단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정확한 정보와 안전한 과학 지식이 아이에게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도록 유의했다.
실험 그 너머, 과학적 사고의 시작
이번 실험은 단순히 물의 종류에 따른 미생물 변화만을 관찰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와 함께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하며, 실제로 관찰한 후 결론을 도출하는 전 과정을 함께 경험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물에 병균이 살까?”였던 질문은, 어느새 “왜 그런 결과가 나왔을까?”, “다른 환경에서는 어떻게 될까?”와 같은 추가적인 질문으로 확장되었다. 아이의 눈빛 속엔 더 많은 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이 실험을 통해 ‘과학 교육’은 지식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다. 물 한 컵, 면봉 하나, 그리고 며칠의 기다림만으로도 아이는 스스로 세상을 보는 눈을 하나 더 갖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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